창세기 1장 1-2절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부제: 혼돈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라하프)과 새 창조의 시작
서론: 모든 것의 시작, 한 문장의 선포
성경의 첫 장, 첫 구절은 장엄하고 간결한 선포로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이 한 문장은 단순한 이야기의 시작을 넘어,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이자 핵심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기원, 인간의 존재 이유,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모든 질문은 바로 이 선언에서 출발합니다. 왜 이 구절이 그토록 중요할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묘사는 이 첫 선언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오늘 우리는 창세기 1장 1-2절을 중심으로, 천지 창조 선언의 깊은 의미와 혼돈 속에서 일하기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사역(주제 1)을 함께 묵상하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다시 한번 붙잡고자 합니다.
1. 왜 창세기 1장 1절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가?
창세기 1장 1절은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이 아닙니다. 설교 노트에서 강조하듯, 이 말씀의 일차적인 독자는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막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400년간 애굽의 다신론 문화와 자연 만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환경에 노출되었던 그들에게, 모세는 창세기를 통해 가장 먼저 선포해야 할 진리가 있었습니다.
-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선포: 애굽인들이 섬기던 태양, 달, 별, 강, 바다, 심지어 뱀과 같은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분은 오직 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지으신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임을 강력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은 기독교와 이방 종교, 진리와 세상 풍속(시대정신)을 가르는 분기점이며, 우상 숭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 ‘바라’ – 무(無)에서의 창조: 히브리어에는 ‘창조’를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지만, 창세기 1장 1절에는 ‘바라'(בָּרָא)라는 특별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기존의 재료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만드는 ‘야차르’나 ‘아사’와 달리,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때 사용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가 절대적인 무(無)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임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외에 영원하거나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능력을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 ‘천지’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여기서 ‘천지'(하늘과 땅)는 단순히 우리가 눈으로 보는 하늘과 땅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설교 노트의 통찰처럼, 이는 보이는 물리적 우주(땅)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영역(하늘), 즉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존재하는 천상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16은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증언하며, 이사야 66:1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느헤미야 9:6 역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천군)”을 언급합니다. 즉,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와도 연결됩니다.
2. 혼돈, 공허, 흑암: 창조 이전의 상태 (창세기 1:2a)
하나님의 창조 선언 이후, 2절 전반부는 창조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땅’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 세 가지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혼돈(Tohu, תֹ֙הוּ֙): 형태가 없고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태, 황무함.
- 공허(Bohu, וָבֹ֔הוּ): 텅 비어 있는 상태, 내용물이 없음.
- 흑암(Choshek, וְחֹ֖שֶׁךְ): 빛이 전혀 없는 완전한 어둠.
- 깊음(Tehom, תְּה֑וֹם): 통제되지 않은 깊고 광대한 물의 상태.
이 상태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미완성된 상태를 넘어,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설교 노트에서 지적하듯이, 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상태, 즉 죽음과 절망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는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내거나 질서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영적 상태, 애굽에서 희망 없이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깨닫지도, 찾을 수도 없는 무능력하고 절망적인 상태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의 운행 (라하프): 새 창조의 시작 (창세기 1:2b)
바로 이 절망적인 혼돈과 흑암의 상태 위에, 놀라운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하나님의 영(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영'(루아흐 엘로힘, ר֤וּחַ אֱלֹהִים֙)은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 생명의 숨결, 즉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운행하다'(메라헤페트, מְרַחֶ֖פֶת)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라하프'(רָחַף)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 ‘라하프’의 의미: 설교 노트에서 아름답게 설명하듯이, ‘라하프’는 단순히 표면 위를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미 새가 알이나 새끼를 날개로 품어 덮고 보호하며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듯이 부드럽게 감싸고 도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신명기 32장 1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모습을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라하프)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라고 묘사합니다. 출애굽기 19장 4절에서도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 성령의 창조적 사역: 따라서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의 운행’은, 성령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한, 생명 없는 죽음의 상태를 사랑과 능력으로 품으시고, 그 안에 질서와 생명, 빛을 가져오실 새 창조 사역을 시작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역동적인 그림입니다. 성령은 무질서 위에 질서를, 공허함 위에 충만함을, 흑암 위에 빛을 가져오실 하나님의 능력이자 의지입니다.
- 창조와 구원의 연결: 설교 노트는 이 ‘하나님의 영'(바람)의 사역이 이후 구원 역사에서도 반복됨을 지적합니다. 노아 홍수 후 바람(루아흐)을 불게 하사 물을 감하게 하시고(창 8:1), 강한 동풍(루아흐)으로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을 드러내신(출 14:21) 사건들은 창조 때 수면 위를 운행하시며 생명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영의 사역과 연결됩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곧 구원자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며,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창조 기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게 했을 것입니다.
4. 오늘, 우리 위에 운행하시는 성령
창세기 1장 1-2절의 이야기는 태초의 사건으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영으로 품으시며 새롭게 창조하셨듯이,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죄로 인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워진 우리의 심령과 세상 위에 동일하게 운행하십니다.
- 개인적인 새 창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요 3:5-6),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빚어 가시는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고후 5:17). 우리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질서를, 텅 빈 마음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풍성함을, 어두운 마음에 진리의 빛을 가져다주십니다.
- 교회 공동체: 교회는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새로운 창조의 현장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공동체로 세워져 갑니다.
- 세상을 향한 소망: 비록 세상이 여전히 죄와 혼돈, 어둠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따라 일하고 계시며, 마침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계 21:5).
결론: 창조주 하나님과 운행하시는 성령을 신뢰하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포는 흔들릴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반석입니다. 이 세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능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부터,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절망적인 상태 위에 ‘하나님의 영’이셨던 성령께서 어미 새처럼 품으시고 운행하시며 생명과 질서, 빛을 가져오는 새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때로는 혼돈스럽고 공허하며 어둡게 느껴질지라도, 태초부터 일하셨던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품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우리 교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을 쉬지 않고 이루어 가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우리 위에 운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절망 속에서 소망을 발견하고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